엄마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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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감 감옥엄마의 생각/생각 2023. 1. 31. 19:23
열두 달의 마지막 날, 가온이는 유치원 졸업과 함께 독감을 얻었다. 주말이 끼어 병원에 바로 가지 못하는 바람에 회복이 더뎠다. 묵은 독감에 항바이러스제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 주는 하온이의 어린이집 방학이었다. 모처럼 단둘이 달콤한 시간을 보내야지. 엄마를 마음껏 독점하렴. 아이와 실컷 살을 부비고 눈을 맞추었다. 처음으로 누나 없이 키즈카페도 갔다. 태어나 세 돌을 앞두기까지 늘 경쟁 상태여야 하는 이 작은 아이를 어루만져주고 싶었다. 나의 일과는 잠시 내려놓기로 했다. 이후 불어닥칠 폭풍은 까맣게 모른 채였다. 가온이의 기침은 열흘 남짓 계속되었다. 독감은 의무 격리 기간은 없지만 그렇다고 전염력을 가진 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갈 수도, 집에 혼자 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완치될 때까지 꼼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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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수영의 매력엄마의 생각/수영 2023. 1. 19. 17:31
우월감은 나의 원동력이다. 사람들이 나의 잘남에 감탄할 때 짜릿한 쾌감을 느낀다. 그리고 그 잘남을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쏟는다. 우월감은 줄곧 나를 경쟁에서 이기게 해 주었다. 나에게 잘난 모습이 있다면, 그것의 원천은 바로 우월감일 게다. 우월감이라는 건, 실은 열등감과 다르지 않다. 남에게 지거나 못한 상황을 견디기 힘들다. 이럴 땐 두 가지의 선택지가 있다. 노력하거나, 회피하거나. 노력으로 이길 수 있을 것 같지 않으면 깨끗이 손을 놓는 게 나의 전략이다. 수영을 피하고 싶었던 이유로 수영복의 노출이 부담스러웠다고 말하곤 하지만, 사실은 이 우월감 내지는 열등감도 한몫했다. 어릴 적 방학마다 한 달간 열리는 수영 방학 특강에 다닌 적이 있다. 초등학생 전 학년을 대상으로 진행되던 수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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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바다 수영엔 역시 평영이다!엄마의 생각/수영 2023. 1. 4. 17:49
2박 3일의 여름휴가를 떠났다. 남편과 아이들에게 그동안 갈고닦아온 나의 수영 실력을 보여줄 때가 온 것이다. 우리는 강원도 고성으로 향했다. 남편은 텐트를 치고 아이들은 모래 놀이를 했다. 나는 곧장 바다로 달려갔다. 별다른 장비는 필요 없었다. 속이 비치지 않고 움직임이 편한 운동복과 물안경 하나. 그거면 충분했다. 호기롭게 뛰어들었지만, 놀랍게도 8월의 고성 바다는 정신이 번쩍 들도록 차가웠다. 동해는 수심이 깊어 온도 변화가 느리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한발 내딛을 때마다 ‘윽’ 하고 숨이 멎었다. 몇 번의 ‘윽’을 지나 물이 허벅지까지 닿았을 때, 몸을 웅크리고 조금씩 자세를 낮췄다. 엉덩이, 배꼽, 가슴… 마침내 어깨까지 물이 차올랐고, 비로소 나는 가슴 위로 교차하고 있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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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 new year!엄마의 생각/생각 2023. 1. 1. 15:10
고요한 거실에서 남편과 오붓하게 맥주를 마시며 새해를 맞이하고 싶었다. 티비에선 뎅뎅뎅 보신각 타종 소리와 환호가 울려 퍼지고, 남편과 사랑을 한가득 담은 말을 나누고, 단잠에 빠진 아이들의 얼굴을 조심스레 어루만지며 잠드는 새해 첫날을 기대했다. 하지만 눈을 떴을 땐 나도 모르는 새에 이미 새해가 밝은 뒤였다. 아이들을 재우며 나도 남편도 함께 잠들어 버린 것이다. 어쨌든 2023년 1월 1일이다. 만 나이 시행이 예고된 터라 아이들에게 “떡국 먹고 한 살 더 먹자”, “여덟 살 누나 된 것 축하해”라는 말을 하기가 머뭇거려지는 새해 첫날이다. 가온이는 코로나인지 독감인지 모를 고약한 열병에 걸려 마스크를 쓰고 새해를 맞이한다. 이러나저러나 시간은 흐른다. 차곡차곡 성실히 사는 수밖에. 새봄엔 이사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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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엄마의 생각/생각 2022. 12. 14. 23:23
20대에는 그저 나의 존재가 사라지길 바랐다. 하루하루가 고통이었다. 증발하듯 홀연히 사라지는 방법을 알지 못해 여지없이 생을 이어갈 뿐이었다. 어느 날 내 몸에 또 다른 생명이 자란다는 것을 알게 되어, 나는 살아야 했다. 누군가의 생명에 필수 불가결한 존재가 되는 것. 책임감은 사랑이고, 생의 이유이자 의무였다. 엄마가 되자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삶을 대하게 되었다. 나는 내 아이들이 ‘스스로 행복한 사람’으로 살길 원한다. 나에게 육아의 가장 큰 목표이다. 스스로 행복한 사람으로 키워내기 위해서는 가르침이 아닌 본보기가 필요하다. 내가 먼저 스스로 행복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행복은 과연 무엇일까? 최인철 저 에 따르면, 행복은 조건이 아니라 상태다. 쾌족(快足), 즉 남의 시선에 연연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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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평영 고비엄마의 생각/수영 2022. 12. 12. 14:13
' 중 급 반 ' 매일 수영장에 출근 도장 찍는 게 익숙해질 무렵, 반 이름이 바뀌었다. 두 달간 빠짐없이 강습에 출석하며 자유형과 배영을 수월하게 익힌 기특한 나에게 선물을 주고 싶었다. 무려 중급반이나 되었는데, 초보 티 나는 수영복은 이제 벗어도 되지 않을까? 그래. 새 수영복을 사자! 새 수영복을 입고 평영을 배우게 되었다. 일명 개구리헤엄. 먼저 풀 벽을 잡고 발차기를 배웠다. 무릎을 구부려 양발을 동시에 엉덩이 쪽으로 모았다가 다리를 벌리며 쭉 편다. 강사님이 다리를 잡고 알려주셔도 동작이 잘 익혀지지 않았다. 서툴게 다리를 밀어낼 때마다 몸이 붕 떠오르며 밀리는 게 느껴졌다. 드디어 킥판을 잡았다. 왠지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몸을 가볍게 띄우고 양발을 힘껏 찼다. 분명 ‘힘껏’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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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렇게 재미있어도 되는 걸까?엄마의 생각/수영 2022. 12. 2. 12:24
“이제 누가 잘하는지 가려지죠? 빠른 분은 앞으로 오세요. 회원님은 맨 앞으로.” 강습 일주일이 지나자 암묵적인 자리가 정해졌다. 고만고만한 수영 병아리 사이에서 얼떨결에 1번이 되었다. 강습이 없는 날에는 매일 자유 수영을 갔다. 강습에서 배운 것을 복습하고, 다음 시간에 배울 내용을 시도해 보기도 했다. 아직 킥판 잡고 25m 한 번 가는 것도 무척 힘들었지만, 물 안에 있는 그 자체만으로 이미 충분히 즐거웠다. 여기서 잠깐! 자유 수영은 강사의 지시 없이 자율적으로 연습하는 시간인 만큼 매너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우측통행 -풀 레인 바닥에는 중앙선이 표시되어 있다. 중앙선을 중심으로 양방향 우측통행을 한다. 벽면의 터닝 타깃은 비워 두기 -풀의 양쪽 벽 중앙에는 턴을 위한 포인트가 표시되어 있다..